할로윈3 Halloween III: Season Of The Witch, 1983 - 토미 리 월리스 1980년대 공포영화



*스포일러 포함

<할로윈2>에서 마이클 마이어스가 죽고, 존 카펜터의 원래 계획은 매년 새로운 “할로윈”을 만드는 것이었다. 할로윈 데이 때 벌어지는 갖가지 이야기들. 하지만 생각보다 <할로윈3>가 흥행이 저조하자 영화 제작자들은 마이클 마이어스를 부활시키기로 마음 먹는다. 

이 영화는 <할로윈> 시리즈의 팬들에게 욕을 어마어마하게 먹었는데, 마이클 마이어스를 다시 보게 되리라는 설렘을 안고 영화관을 찾았다가 막상 보고 나온 것은 괴상한 SF판타지호러물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보면서 계속 ‘어라? 왜 이 영화를 <할로윈> 시리즈에 넣은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존 카펜터 감독의 계획을 영화 보고나서야 알게 되었는데, 그의 계획처럼 앤솔러지 형식으로 가도 좋았을 것 같다. 마치 할로윈 유니버셜처럼. <할로윈3>에 나오는 술집에서 <할로윈1>을 틀어주기도 하고, 나름 재치있게 연관 지어 놓았다. 

물론 영화의 만듦새는 굉장히 아쉽다. 허술해도 너무 허술하니까. 뿐만아니라 중년 남성의 판타지가 들어간 불필요한 애정씬이나, 우왕좌왕하는 인조인간들이나, 너무 쉽게 탈출하는 주인공이나, 스톤헨지의 힘을 갖고있으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할로윈 가면 공장이나, 어줍잖은 CG나(작작 했어야지), 말할 것들이 참.... 많다.

그래도 나는 마이클 마이어스가 나오는 할로윈 시리즈와 독립적인 작품으로 보자면, 할로윈 유니버셜로서 시도해볼만한 영화였다고 본다. 할로윈날 실버 샘락의 가면을 쓰고 할로윈 광고를 보게 되면, 가면을 쓴 사람들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TV앞에 모여들게 될 것이고, 얼마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머리가 오그라들고 벌레며 뱀이며 죄다 튀어나와 세상을 멸망케 할 것이라는 실버 샘락 공장의 음모.

테스트 룸에서 가족이 당하는 장면은 인상적이긴 하다(사실은 끔찍하다). 이런 장면처럼, 조금만 더 신경써서 만들었다면 존 카펜터의 바람대로 매년 새로운 할로윈 영화를 만날 수 있었을 텐데... 할로윈 시리즈 통틀어서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버린 <할로윈3>. 마이클 마이어스가 안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망작이라고 폄하되기엔 아쉽긴 하다. 지적할만한 사항이 차고 넘치지만, 겁나 신박하다. 

할로윈2 - 저주받은 병실 Halloween II, 1981 - 릭 로젠탈 1980년대 공포영화


*스포일러 포함

1편에서 2편까지 이어지는 로리의 극한 할로윈 데이. 시간상 점프 없이 바로 내용이 이어진다. 총을 여섯발 맞고도 살아나는 불사신 마이클은 현장을 떠나 한 가정집에서 식칼을 훔친다-가정집에서 남편이 보고 있던 영화로 조지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나오는데, 총맞고 불에 타도 다시 살아나는 마이클에 대한 비유인 것인가... 아무튼 이때 마이클 시점으로 보여지는 카메라 워킹이 좋다.

우리나라에 수입될 때 ‘저주받은 병실’이라는 부제가 붙었는데, 이처럼 영화의 주무대는 로리가 입원한 병원이다. 1편에서부터 마이클은 끈질기게 로리를 추격하는데, 그 이유가 2편에서 알려진다. 바로 로리 스트로드가 마이클의 여동생이었던 것. 마이클과 로리의 관계가 명확해진다. 

아무리 가족이라 한들 왜그렇게까지 로리를 죽이려 하는지에 대해선 명확하게 나온 바는 없다. 순수 악인 마이클이 자신의 마지막 남은 인간적인 기억 따위를 모조리 제거해버리려는 것일까-마이클은 로리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멈칫하더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아무도 없는 병원에서 로리와 마이클의 추격전에서 마이클은 전혀 뛰질 않는다. 그래서 마이클의 침착함과 냉정함이 더 두드러지지만 긴장감은 다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창문으로 빠져나가는 로리를 해하려는 마이클이 허술해보이기도 하고, 두개골도 아작낼 수 있는 괴력을 가진 마이클이 고작 닫히는 엘레베이터 문을 제지 못하여 메스만 들이밀 뿐 허무하게 로리를 보내버리는 장면도 아쉽기만 하다. 

이미 ‘뛰지 않는’ 살인마라는 캐릭터성을 얻었기 때문에 목표물을 향해 달려버리면 오히려 쌩뚱맞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뛰는 주인공과 걷는 살인마를 보며 긴장감을 느끼기엔 세월이 많이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에 마이클은 불에 타버리고 만다. 온몸에 불이 붙어도 차분하게 걷는 그의 모습이란. 도대체가 마이클에게선 오두방정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인간이 아니야.”라는 루미스 박사의 말처럼 마이클은 언제까지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할로윈 Halloween, 1978 - 존 카펜터 1970년대 공포영화


*스포일러 포함

딴단단딴단단딴단 딴단단딴단단딴단. 왠지 글자만 읽어도 음악이 들리는 느낌이랄까. <할로윈>을 보지 않아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익숙한 음악이 흐르면서 오프닝이 시작되는데, 아, 오래도록 기억 남을 오프닝 시퀀스이다. 

여섯살 꼬마 마이클 시점의 카메라 워킹, 가면을 주울 때 언뜻 보이던 광대복장(그리고 작은 손), 가면을 쓴 뒤 눈 부분을 빼고 가려진 시야, 오히려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은 살해장면(마이클은 자신의 누나를 죽인다), 그리고 도착한 부모님이 마이클의 가면을 벗길 때까지. 굉장히 인상적이다. 그 꼬마의 멍한 표정이란.

<할로윈>은 슬래셔 영화의 교과서같은 영화로 꼽힌다. 슬래셔 영화의 효시는 아니지만 체계를 세웠달까(효시로는 <사이코>, <블랙 크리스마스>,  <텍사스 전기톱 학살>이 언급된다). 아무튼 시초가 뭐였든간에 <할로윈>이 슬래셔 영화의 시대를 열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할로윈>은 슬래셔 영화 치고는 잔혹하지 않은데, 심지어 피도 별로 나오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누가누가 더 잔인하게 죽이나 게임하는 것 같은 슬래셔 영화를 즐기진 않지만 <할로윈>은 부담없이 볼 수 있었다.

다만 압도적이었던 오프닝에 비해 갈수록 호흡이 빠르지 않아서 다소 느리게 느껴진다는 점이 아쉽다(그래도 마지막에 로리를 몰아붙일 땐 좀 빠르더라). 마이클 자체도 과묵하고 빠르지 않고 묵직한 한방이 있는 캐릭터라 더 그런듯 하다. 하지만 지루할 때마다 존 카펜터의 음악이 나와주어서 좋았다-어떻게 이런 음악을 만들었을까, 아마 이 음악은 길이길이 기억되리.

공포영화 중에선 각 캐릭터들에게 아무런 성격을 부여하지 않고 ‘어차피 곧 죽을 애들’ 식으로 뭉뚱그리기도 하는데(살인마들도 가면 쓰고 칼 휘두르면 끝), <할로윈>은 주조연 뿐만 아니라 메인 캐릭터인 마이클에 대해서도 여러 단서들을 제공한다. 그렇기에 속편들이 물고 늘어질 수 있었던 것 아닐까. 마이클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영화는 마이클이 총을 여러 발 맞고도 자취를 감추며 속편의 여지를 남기고 끝난다. 이후의 시리즈들에서 어떤 마이클이 나올지 기대(는 안 하는 게 좋겠지만)해 본다.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 - 황금가지 공포문학

*스포일러 포함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은 웹소설 플랫폼 브릿G에서 괜찮은 단편들을 뽑아 황금가지에서 엮어낸 단편공포소설집이다. 총 10명의 작가들의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허수아비], [그네], [완벽한 죽음을 팝니다], [더 도어]는 조금 상투적인 느낌이어서 아쉽다. 약간 <공포특급>에 나올 것 같은 느낌-이건 개인적인 취향이니깐, 뭐. [이화령], [이른 새벽의 울음소리], [고속버스] 또한 새로운 느낌은 없으나 재미있게 읽은 편이다. 일단 [고속버스]는 뻔한 설정안에서 작가의 가독성 쩌는 문장으로 끌고간다.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되어 고속버스 좌석에 앉아있는 느낌이랄까. [증명된 사실]은 이공계 출신인 저자의 '사후세계'에 대한 섬뜩한(그리고 우울한) 답변이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본 것은 [위탁관리]와 [천장세]. 그 중에서도 [천장세]. 


읽고나면 굉장히 찜찜하다. 그러나 문장만으로 이런 찜찜함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좋은점. 가독성이 굉장히 뛰어나다. 으, 하지만 역시 상상하기도 싫은 장면들이다. 실제로 나한테 일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아.


작가의 예전 단편 [돼지가면 놀이]를 굉장히 재미있게 본지라 보기 전부터 기대했던 작품. 그런데 역시나 괴상한 작품이다. 게다가 생각할 거리도 있는 걸. 월월세라느니, 천장세라느니, 이런 걸 어떻게 생각해낸 걸까...? 돈이 없어 화장실에 세를 주고(그런데  신혼부부 세입자가 들어온다!), 신혼부부는 나중에 천장세를 준다. 이거 참, 문장으로 정리가 안 되는 이상한 내용. 그냥 말이 안 된다(화장실에 신혼부부가 어떻게 살아? 천장은 또 어떻고!) 그런데 마음에 든다. 게다가 신박해. 비슷한 설정의 연극도 있는 것 같은데, 이 작품도 연극으로 만들면 굉장히 재밌을 것 같다. 신혼부부 캐릭터나, 천장에 사는 여자나(결국은 본인이지만...), 이토 준지 만화 속 캐릭터들을 떠올리게 했다. 차기작이 자꾸 기대되는 작가.

아무튼 가벼운 마음으로 읽은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 원래 이런 단편집은 내 마음에 드는 한두편만 발견해도 큰 성공이다. 그러니까 난 성공했어.

로즈메리의 아기 Rosemary's Baby - 아이라 레빈 공포문학

*스포일러 포함

1967년 출간한 아이라 레빈의 오컬트 소설 <로즈메리의 아기>. 소설 보다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로즈메리의 아기(악마의 씨)>를 먼저 접했는데, 영상미며 긴장감이며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8년 전에 본 거라 기억이 가물가물). 그런데 갑자기 이 원작 소설이 보고싶어졌다. 워낙 오컬트를 좋아하는데다 영화가 아닌 소설이라는 매체 안에서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했기 때문. 

처음엔 그냥저냥 읽었다. 아무래도 복잡한 플롯도 아니었거니와 옛날 미국 소설 특유의 낯간지러운 묘사들 때문에 오그라들기도(?) 해서. 그러나 무슨 일인지 이틀만에 다 읽어버렸다. 조금만 더 읽고 덮어야지, 하다가 정신 차려보니 마지막 장이었다. 아무래도 인물들의 행동, 로즈메리만의 감정 묘사가 주를 이루다보니 가독성이 좋았다. 게다가 영화 보듯이 이미지가 곧잘 떠올랐다.

로즈메리는 아기를 찾으러 가기 전까진 수동적인 캐릭터에 가깝다. 칼을 들고 아기가 있는 로만 부부네로 가지만 적극적인 공격도, 악마의 아기를 죽이지도 못한다. 결국 악마 숭배자들이 에이드리언이라고 부르는, 자신의(사탄의) 아들 앤디 곁에 남기로 한다. "에이드리언의 어머니, 로즈메리 만세!" 하지만 로즈메리가 수동적이었기 때문에 이 책만의 어딘가 병약하고 무력한 무드가 생기지 않았나 싶다. 

그때문인지 지금 보면 결말이 다소 심심하긴 하다. 사탄의(자신의) 아기를 창밖으로 내던지든, 자신도 악마 숭배자가 되든, 그냥 이 미친놈들을 떠나 영영 뉴욕으로 돌아오지 않든, 로즈메리는 뭔가 시원하게 선택하지 않는다. 악마 숭배자들이 아들을 에이드리언이라고 부르든 어쩌든, 뭔가 마이웨이로 앤디를 보살필 것이란 암시 정도. 

그래도 나는 이 소설이 마음에 든다. 임신/출산이라는 거대한 공포 위에 악마주의, 악몽, 사탄과의 섹스-잉태 등 오묘한 것들이 곁들여 있어서 지금 봐도 그 공포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간만에 영화를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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