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닝맨 The Running Man, 1987 - 폴 마이클 글레이저 SF/스릴러/미스테리 영화

* 스포일러 포함

헬기에서 민간인들을 학살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무시하다가 감옥에 가게된 벤, 그러나 오히려 벤이 민간인을 학살한 것처럼 비디오 조작이 되어버려 사람들의 원성을 산다. 하지만 벤은 언제까지 이곳에 살 수 없으리란 생각에 동료들과 탈옥을 하게 된다. 한편 '런닝맨'이라는 최고의 TV 프로그램 진행자는 탈옥하는 벤의 영상을 보고 법무부와 딜을 본 후 런닝맨에 출연시키기로 한다. 룰은 간단하다. 런닝맨은 도망가고, 추격자는 그를 쫓는다. 그러나 런닝맨은 맨몸이지만 추격자는 무기들을 주렁주렁 달고 가기에, 이미 상당히 불리한 게임이다. 이러한 룰은 경기장 안에 죄수와 맹수를 함께 가두며 죄수가 물어 뜯기는 장면을 즐기던 중세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기술의 발달로 형태만 바뀌었을 뿐, 인간 본성은 여전한 듯하다.

의외로 큰 세계관이다. 정부가 통제하고 사람들은 TV 앞에 모여들어 자극적인 방송에 열광한다. 그러나...세계관이 아깝다. 좋은 요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가벼운 액션물로 다뤄진 건 아닌가 한다. 스티븐 킹이 '리처드 버크만'이라는 필명으로 냈던 소설이 원작이라는데, 나는 읽어보지 않아 비교가 어렵지만 듣기론 '주인공이 죽음의 게임에 참가한다'는 설정만 같고 많은 부분(주인공의 성격이나 전사, 게임의 룰, 결말 등)이 다르다고 한다. 스티븐 킹과 원작 팬들이 혹평했다고 하는데...그럴만 하다. 일단...도대체 그 노란색 쫄쫄이는 뭔데! 아무래도 가벼운 맛은 쫄쫄이로부터 시작된 것 같다... 여기서부터 진지한 몰입이 되지 못했다고...그리고 추격자들은 또 어떤가. 여기서 다 묘사하지 못할 만큼 충격의 만듦새다. 물론! 87년도 영화라는 것은 알지만, 이게 최선이었나 싶은거지.

그렇다고 모든 부분이 구리다는 것은 아니고, 중간중간 흥미로운 부분도 있었다. 다만 오락에 치중했기 때문에 디테일이 떨어지고 너무 쉽게 이야기가 흘러간다. 벤과 앰버가 반군을 만나고 그들이 강력한 프로그램을 이기는 과정이 하나도 쫄깃하지가 않다. 그냥 그렇게 흘러가게 만들었으니 흘러가는 느낌. 그런데 보다보면 사실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긴 한다. 애초에 영화의 주목적은 치밀한 서사가 아니니까. 그냥 근육질의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어떻게 추격자들을 무찌르는지가 더 중요하다-그럼 멋지게 찍어주지...

그래도 그런 맛에 보는 게 또 재미니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특유의 70, 80년대 SF 영화에 나올 법한 그래픽(?) 보는 재미도 있었다. 여러모로 아쉬워 주절주절 댔는데...또 생각하면 '그래도 꽤 매력있던 것 같은데?' 싶다. 왜 보고나니 더 생각나는 것일까. 묘한 영화야.


7년의 밤 - 정유정 SF/스릴러/미스테리 문학

*스포일러 포함


레퍼런스 삼아서 본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 '세령 마을'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짜임새 있는 세계관이었다. 앞에 지도까지 첨부되어 있는데 묘사를 따라 이미지를 그리다보면 실제 있는 마을처럼 느껴질 정도다. 작가는 세령 마을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인물들간의 복잡한 심리와 사건들을 다룬다. 사실 캐릭터 면에서는 엄청나게 독창적인 인물은 눈에 띄지 않았다. 많은 독자들이 '오영제'를 언급하지만 그 말고는 조금은 평범하다-지금은 전형적인 인물들이다. 

하지만 정유정  작가의 강점은 인물들의 전사를 자세히 설정해 놓고 독자들에게 들려준다는 점이다. 그래서 독자는 인물에 대해 너무나 자세히 알아버린다. 영화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인물들의 디테일한 감정들을 쫓아서 읽기 때문에, 공감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다이빙과 댐 설비에 관해 엄청난 자료조사를 했구나가 여실히 보여진다. 예전에 본 정유정 작가의 인터뷰에서 글이 막히면 자료조사를 한다고 했던 것 같다. 아닌가? 그래도 자료조사에 대해 강조한 것은 맞다. 이것은 이야기가 생명력을 갖게 만들어주는 필수 요소다.

소설은 처음부터 사건을 까고 시작한다. 최현수가 12살 난 여자애를 죽이고 호수에 유기, 그의 아빠와 자신의 아내까지 살해한 데다 댐의 수문까지 열어서 저지대에 사는 마을사람들까지 죽게 만들었다. 그리고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이름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서원이 어른이 된 후, 자신을 거둬서 키워준-그리고 갑자기 사라진 아저씨(승환)의 소설 원고를 배달 받게 되면서 과거의 진실을 알게 된다는 구성이다.

나름의 반전은 일찍 캐치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계속 읽게 된다. 촘촘하다.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다. 특히 초반부의 흡입력은 대단하다. 그리고 소설의 소재로 삼기 위해 호수에 잠긴 옛 세령 마을에 잠수하여 돌아보던 승환이 세령의 시체가 잠기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정말 '사라진 아틀란티스'를 탐색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중후반부 들어서는 속도감이 떨어졌다. 어떻게 흘러갈지 짐작이 되기도 했고, 촘촘한 만큼 많은 양의 묘사 때문에 당연한 것이긴 하다. 책이 가진 명성만큼 흠뻑 빠지진 못했지만, 정유정 작가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그의 인터뷰를 찾아봐야겠다.

7년의 밤 Seven Years of Night, 2018 - 추창민 SF/스릴러/미스테리 영화


좋은 원작이 좋은 영화를 가져오진 않는다. 가장 중요한 첫단추인 '각색'에서 실패하면 엉성한 오리지날 시나리오로 찍은 영화보다도 더 안타까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정유정 작가의 소설 <7년의 밤>을 다 읽고 연달아 영화 <7년의 밤>을 보았다. 원작 소설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를 먼저 봤다면, 도대체 왜 저러는 것인지 감정선이 잘 이해되지 않을 것 같았다. 소설은 각각의 인물들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보여주기에, 그리고 지나치게 세밀한 묘사 덕에 인물을 깊이 알 수 있지만, 영화는 장면으로 보여줘야 한다(물론 나레이션이라는 장치가 있다만 이 영화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각색을 할 때 어떤 것을 보여주고 압축해야 경제적이고 효과적인지 고민을 해야만 한다. 물론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각색만 2년이 걸렸다고 하니 별에 별 시도는 다 했을 것 같다. 나 또한 영화를 보는 내내 어떻게 각색을 하면 잘 살릴 수 있었을까 고민했다. 그 결과 최고가 아닌 '최선'의 방향만 나오더라...

그러니까 원작 자체가 각색이 어려운 소설이다. 그래서 함정에 빠지기 쉽다. 정유정 작가의 소설은 서사를 보면 영화화 하기 쉬워보이지만, 막상 각색을 하면 입체적이었던 인물이 평면적으로 그려지기 쉽다. 작가가 심리묘사로 세공해놓은 인물을 세련된 장면으로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이 아닌지... <7년의 밤>만 보더라도 딸 세령과 하영에게 집착하고 폭력을 가하는 오영제가 마지막에선 마치 자신의 행동을 '사랑'으로 합리화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소설속에선 말그대로 그냥 미친놈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기가 정한 질서대로 되지 않으면 폭발하고 마는, 자기가 잃은 만큼 상대도 똑같이 잃어야 직성이 풀리는 오영제의 캐릭터는 단순히 폭력 아빠/남편으로만 그치고 말았다. 

또한 '최현수'라는 인물....그러니까 영화상에서의 주인공이 가장 애매하다. 오해받기 쉽다. 세령이 갑자기 튀어나왔든 아니든 이미 음주운전 중이었고, 차에 받혔지만 숨을 쉬고 있던 세령을 죽인 살인자다. 소설에서야 그의 트라우마며 미쳐가는 과정을 자세히 보여주니 어찌어찌 인물을 잘 따라갈 수 있는데, 영화에서는 오히려 최현수의 트라우마 장면을 지나치게 많이 보여주어 속도감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차라리 <끝까지 간다> 느낌처럼, 최현수가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자수를 하면 안 되는 이유-를 상황적으로 몰아붙였더라면 어땠을까. 그리고 영화의 전체적인 구성을 '최현수 VS 오영제'로 가져갔다면 훨씬 깔끔했을 것 같다. 지금은 원작 내용을 띄엄띄엄 보여주는 느낌이 강하다. 그렇기에 개연성 지적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아까도 말했듯 각색이 어려운 원작이다. 예견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참 안타까운 영화.

손님 The piper, 2015 - 김광태 2000년대 공포영화


레퍼런스를 찾다가 다시 보게 된 <손님>. 독일 민담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와 뜻하지 않은 귀신 '손'에 관한 한국의 민간 신앙을 결합시킨 판타지 호러다. 시도 자체는 굉장히 높게 산다. 호러 중에서도 판타지 호러는 찾아보기 힘든 한국에서 제작비 40억짜리 판타지 호러라니. 게다가 배우진도 빵빵하다. 하지만 결과는 밍숭맹숭. 분명 영화 안에 담고자 하는 집단적 죄의식, 타자에 대한 배척, 한국 근현대사의 어두운 일면에 대한 우화 등이 잘 드러난다. 그럼에도 삼삼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어쩔 수 없이 '피리 부는 사나이'를 아는 사람이라면 대충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예상 가능하다. 새롭게 짜 맞춰야하는 것은 결국 마을 내 미스테리인데, 마을의 어마어마한 '비밀' 보다도 후반부에 나오는 '쥐떼'가 더 공포스럽다. "살기 위해 짓는 죄는 괜찮다"며 결국 죄를 짓고야마는 마을 사람들에 대한 과거는 충분히 잔혹하고 무섭지만, 큰 임팩트로 다가오지 않았다. 기시감 때문인가... (그래도 무당 나올 때가 가장 무섭) 후반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영화는 전반부와 후반부의 분위기가 극명하게 나뉜다. 의도한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영화에 들어있는 장르는 판타지와 호러뿐만이 아니다. 우룡이 각성하기 전까진 곳곳에 코미디와 멜로 라인이 들어가 있다. 물론 미숙과의 멜로는 후반부 아들의 죽음과 사랑에 대한 배신으로 각성하는 우룡을 위해 필요한 장치로 기능한다. 하지만 코미디는....? 

이건 개인 취향일 수도 있지만 여러 장르적인 요소를 가지고 올 땐 더 조심해야한다고 본다. 호러에 코미디를 넣고 싶으면 아예 호러 코미디로 밀고갔으면... 개인적으로는 애매하게 코미디 요소를 넣을 바에야 아예 빼고 후반부 혼돈의 쥐 카오스로 끌고 갈 때까지 집중하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그리고 캐릭터도 더 입체적으로 그려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가장 복잡한 인물은 주인공 우룡이 아닌 촌장이다. 우룡의 전사를 꼭 영화상에 집어넣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물의 행동이 이미 다 짜여진 판 안에서 노는 듯한 느낌이라서. 이런저런 좋은 것들이 다 들어있는 것 같지만 이상하게 <손님>은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분명 나쁘지 않은데 말야.

<라이온 킹> 심바와 날라 랜덤박스


교감으로 느껴지는 모든 감정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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