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웨이크 Awake, 2007 - 조비 해롤드 스릴러 영화



*스포일러 포함

나는 마취 주사가 필요한 수술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가끔 상상 해본다. 만약 수면 마취를 했다가 영영 깨어나지 못하면 어떡하지? 내 삶을 제대로 정리하지도 못한 채 영원한 죽음을 맞는, 사실 안 하는 게 더 나을  그런 상상들. 그런데 이를 뛰어 넘는 더 강력한 것이 있으니, 그건 바로 '마취 중 각성'이다. 

마취 중 각성은 전신 마취 도중 환자의 의식이 깨어나, 외부의 자극을 그대로 느끼고 기억하는 것을 말한다. (진실여부는 모르겠지만)경험담을 읽어보면, 영화보다도 더 소름 돋는다. 고통을 그대로 느끼면서도 도움을 청할 수 없다. 내 몸을 가르고 장기를 꺼내고 자르는 모든 외부 자극을 수술이 끝날 때까지 인지해야한다. 이 얼마나 죽음보다도 끔찍한 일인가. 고문 당하면 소리라도 지를 수 있지, 이건 뭐....

영화 <어웨이크>는 '수술 중 각성'을 소재로 하지만 그것을 중심적으로 다루진 않는다. 하나의 장치일 뿐이다. 내 기억에, 홍보할 때 '수술 중 각성' 소재 자체를 엄청 밀었던 것 같은데, 사실 그런 짜릿한(?) 공포를 느끼긴 어렵고 음모를 풀어나가는 서사 위주이기 때문에 다소 심심할 수도 있다('수술 중 마취'를 아예 전면으로 내세운 영화였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관객의 반이상은 보다가 나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름 반전이라고 설정된 것들이 치밀하게 짜여진 게 아니어서, 스릴러 골수 팬이라면 초반부 샘이 편지를 숨기듯 가방에 넣는 쇼트를 보고서 일찌감치 눈치챌 수도 있다. 

그래도 중박은 하지않나 싶다. 너무 기대를 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연출이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84분의 짧은 러닝 타임은 아주 적절했고, 클레이가 수술대 위에만 있지 않고(현실에선 수술대 위에만 있지만) 유체이탈 하여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그의 의식을 표현하는 장면-특히 어머니와의 대화 장면은 조금 길게 느껴졌으나 인상적이었다. 

이런 류의 영화를 보면서 하는 생각이지만, 클레이의 고통이 내 일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스크린이라는 안전장치가 계속 유지되기를.

리애니메이터 Re-Animator, 1985 - 스튜어트 고든 1980년대 공포영화


H.P 러브크래프트의 연작 소설을 영화화한 <리애니메이터>(국내 비디오 출시 버전 제목은 <좀비오>). 러브크래프트가 원작 소설을 너무 싫어한 나머지 모두 파기해버려, 스튜어트 고든이 겨우겨우 도서관 특별 열람실에서 찾아내 만들었고 한다(러브크래프트가 무덤에서 이 영화를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리고 주인공이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혈청을 개발한 매드 사이언티스트여서 <프랑켄슈타인> 또한 떠오른다. 

예전에 원작 소설을 읽었던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주인공 캐릭터가 조금 다르다. 원작에선 주인공이 그래도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는데, <리애니메이터>에선 제대로 냉혈한이다. 시체들이 살아나서 난리를 치는 와중에도 겁나 평온하고, 사리분별하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실험물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뭐야 이 인간. 분명 실제로 만나면 가까이 하지 않을 거면서, 고작 105분 동안 스크린으로 봤을 뿐인 허버트 웨스트라는 인물이 마음에 들었다. 분명 매력적인 캐릭터.

이 영화가 비디오로 출시될 당시 엄청나게 가위질을 당했는데, 영화를 보니까 알겠다. 파격적이다 못해 충격적인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특히 잘린 머리인 칼 박사가 매건을 추행하는 장면은 굉장히 불쾌하고 찝찝한 장면으로 길이길이 남는다-으 기억하고 싶지 않아. 어쨌든 설정들은 무시무시하지만 전체적으로 코미디 요소가 많아서인지 영화 자체는 굉장히 경쾌한 편에 속한다. 피범벅에, 성기 노출하는 좀비에, 잘린 머리에, 음.... 경쾌하고 유쾌하다. 정말로.     (?)

마지막에 댄이 죽은 매건에게 혈청을 주입하면서 끝나는데, 상당히 깔끔한 마무리라고 생각 된다. 딱 속편 나올만한 엔딩. 이 영화는 글로 묘사하는데 한계가 있다. 직접 확인하시길.

살인마 A Bloodthirsty Killer, 1965 - 이용민 1960년대 공포영화



*스포일러 포함

제목이 <살인마>여서 살인마를 전면에 내세운 스릴러 영화인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육촌과 시어머니의 계략에 빠져 죽게 된 애자가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 나비에게 복수를 부탁하고, 애자의 죽음에 관계된 사람들이 하나둘 죽거나 아이들이 실종 되는 등의 사건들이 벌어지는 내용이다. 

전반부엔 애자의 복수가 중점이라면 후반부에선 시목이 화가의 편지를 발견하면서 애자의 억울한 사연이 밝혀지는 게 주내용(과거 장면)이다. 이런 구성은 이 영화의 큰 장점이다. 전반부와 후반부가 완전히 뒤바뀐 셈이다. 보통이라면(또는 옛 형식이라면) 먼저 복수장면을 그리는 게 아닌 사연을 먼저 보여줄 텐데. 그래서인지 영화 초반부가 굉장히 요상하게 느껴진다(애자의 흘러내리는 초상화, 미스테리한 택시기사와 화가 등). 애자의 복수가 한창일 때 찔끔찔끔 과거에 대한 힌트가 나오는 점이 재미 포인트. 

시어머니와 혜숙이 악독한 건 말할 것도 없지만, 남편 너무 무능력한 거 아니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어머니 말에 복종하는 마마보이.... 죽은 애자만 불쌍하게 됐다. 

캐릭터들 중에서 가장 독특한 건 역시 보살님. 갑자기 난데없이 식모 구하지 않냐며 집에 들어 앉고(심지어 시목은 "그렇다"며 몇마디 나누지도 않고 바로 일 시킴), 아내 혜숙과 귀신 애자가 싸우는 데 가려는 시목을 말리고, 시목의 아이들을 부처상에 가두고 보호한다. 겁나 쌩뚱맞은데 없으면 허전할 것 같다(광섬 빔 쏴줘야하니까).

아무튼 몇몇 인상적인 장면들이 있었는데, 빈 전람회 건물에서 발견한 애자의 초상화가 흘러내리는 씬, 귀신들이 들판에서 춤을 추는 씬, 거울을 이용한 병원씬, 고양이 연기를 하는 시어머니, 혜숙이 각목으로 귀신(애자) 때리는 씬, 고양이 귀신이 죽는 씬, 그리고.............. 보살님이 광선빔 쏘는 씬. 

(출처:KMDB)


60년대 제작된 영화인만큼 과장된 연기나 어색한 대사가 거슬리기도 하고 유치하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임팩트 있는 장면들이 많다. 전반부의 전개도 상당히 빨라서 몰입도 있게 볼 수 있는데, 그때문인지 후반부는 살~짝 처지는 느낌도 있다. 하지만 한국 공포영화사에서 의미있는 작품인데다 재미도 있으니 한번쯤 볼만하다.

서치 Searching, 2018 - 아니쉬 차간티 스릴러 영화





(형식 얘기 지겹겠지만) 일단 <서치>와 같은 형식을 가진 영화 중 본 것만 떠올려보자면, SNS를 통해 자신의 동영상이 확산되자 자살한 로라 반스의 아이디가 1년 후 화상 채팅방에 접속하면서 벌어지는 <언프렌디드>와 컴퓨터로 랜덤채팅을 하던 주인공에게 이상한 사람이 말을 걸더니 점차 주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더 덴>이 있다. 전자는 아쉬운 부분이 있었고, 후자는 꽤 괜찮았던 걸로 기억한다. 

비교군이 적긴 하지만, 이 형식을 가장 세련되게 이용한 건 역시 <서치>. 컴퓨터 화면으로만 전개가 이루어지는 형식은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지만 덫이 될 수도 있다. 일단 카메라의 위치 선정에 있어서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서치>는 이를 영리하게 이용하면서 흡입력 있게 영화를 끌고 나간다. 연출도 연출이지만 서사도 좋다. 

애틋한 한 가족의 역사를 고스란히 압축해서 보여주는 오프닝 씬도 인상 깊었고, 글을 썼다 지웠다 썻다 지웠다 하거나-마우스 커서가 움찔 거리는 디테일도 좋았고, 떡밥을 살살살 풀다가 하나씩 회수해가는 걸 보는 재미도 있었다. 하나씩 미스테리가 풀릴 때마다, 해소감도 있지만 왜 짠해지는 거죠...? 

그건 아마 영화의 끝을 향해 갈수록 아빠 데이비드가 점차 ‘진짜’ 딸의 마음에 한 걸음씩 다가가기 때문일 것이다. 비로소 딸을 이해하기까지 이리도 오래 걸렸다. 차마 하지 못했던 그 말들을 비로소 할 수 있게 되는 때, 나에겐 과연 올까? 데이비드가 마고에게 “네 엄마도 그렇게 생각할 거야.”라고 시원하게 쏴주는 순간 약간의 대리만족도 느꼈다. 해피 엔딩을 선호하진 않지만, 이 영화는 해피 엔딩이기에 더 견고해졌다. (뭐여, 너무 따뜻한 스릴러야)

딴소리지만, 내가 실종 돼서 아빠가 내 SNS며 노트북까지 다 본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영면해도 괜찮을듯. 그게 바로 진짜 공포.

더 시그널 The Signal, 2007 - 데이빗 브룩크너, 댄 부쉬, 제이콥 젠트리 2000년대 공포영화


*스포일러 포함

미국에서 만든 저예산 호러 무비 <더 시그널>. 영화는 세 파트(Transmission 1, 2, 3)으로 각각 나뉘어 있는데, 데이빗 브룩크너-댄 부쉬-제이콥 젠트리 세 감독이 각각 연출하였다. 그렇기에 영화가 통일성이 없고 따로 논다. 이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에겐 불호일 수도 있으나 이게 이 영화만의 개성이기도 하다. 나의 경우,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그렇다고 불호는 아니었다.

영화의 설정은 간단하다. TV, 라디오, 휴대폰 등을 통해 흘러나오는 전파로 인해 사람들의 뇌가 이상해져 자기들끼리 살육파티를 벌인다. 주인공은 마야, 벤, 루이스로 볼 수 있는데, 마야는 벤과 불륜, 루이스와는 부부관계이다. 루이스는 마야에게 집착적인 사랑을 하고 있고, 마야는 마음으론 벤과 떠나고 싶지만 결국 루이스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와중에 벤은 세상 스윗가이. '너를 위한 음악'이라며 손수 CD까지 선물하고, 그 위험한 와중에 마야를 구하겠다고 아파트까지 찾아온다(그러다 머리를 뚜들겨 맞는 신세가 되지만). 대충 세상이 미쳤고 사람도 미쳤고 죄다 미쳤다고 보면 된다.

'Transmission 1'은 슬래셔 무비의 성격을 띤다. 아파트 내에서 난장 살육 파티가 벌어지는데, 슬래셔 무비를 잘 못보는 터라 윽윽거리며(내가 찔리는 것처럼) 봤다. 다만 마야가 폭력적으로 변한 루이스와 미친 사람들을 피해 제니스의 집까지 들어올 때까지는 흥미롭게 봤는데, 그 이후가 아쉽다. 정원용 가위를 들고 마야를 위협하던 남자가 갑자기 복도 쪽에서 소리가 들린다고 시선을 뺏겨 멀뚱히 서있는 것도 그렇고(대놓고 주인공 살려주는 느낌이라), 한순간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안 되는 상황에서 벤이 선물해준 음악을 들으면서 걸어가는 마야도 그렇고(엔딩까지 이어지는 중요한 소품이라 해도), 루이스를 묶어 놓은 롭의 수다스러운 설명도 그렇고(이 선택이 경제적인건 알지만), 살짝 아쉽다. <REC>풍을 기대했는데 거기에 미치지도 못했고.

'Transmission 2'는 블랙 코미디이다. 새해 파티를 하려던 안나가 자신의 목을 조르던 남편 켄을 죽이고 망연자실해 있는데, 이웃인 켄이 도움을 청하러 왔다가, 루이스가 들어오게 되면서 벌어지는 내용이다. 처음에 세 명의 감독이 나눠서 연출한줄 잊고있었다가 영화가 갑자기 왜이러지? 감독도 감염 됐나? 싶었다. 개인적 취향으론 2편이 가장 재미있었는데, 곳곳에 배치된 유머코드가 나랑 맞아서이겠지. 어떤 사람들은 정색하면서 봤을 수도 있겠다. 그 유머 코드라는게 조금 흔해서(피범벅한 세 명의 남자가 음료수를 마시며 어색하게 프레즐 과자를 먹는다던가, 이 와중에 정말로 새해 전야 파티를 하러 온 짐의 등장이라던가-이건 사실 말은 안 된다). 그런데 나한텐 아직까지 이런 낡은 유머가 통하는듯. 

아무튼 여기에선 전파로 인해 모두들 환각(안나는 죽은 켄이-루이스는 마야)을 보게 된다. 클락은 강제로 TV를 시청하게 돼서 살짝 맛이 가는 바람에 마야가 13번 터미널로 갔다는 사실을 기억해내어 루이스에게 털어놓는다. 그때 죽은 줄 알았던 벤이 루이스를 기절시키면서 2편이 마무리 된다.

'Transmission 3'은 묵시록적인 로맨스. 가장 평이해서 기억에 잘 안 남는다고 쓰려다가, 잘린 롭의 머리와 대화하는 클락의 환상 장면이 떠오른다. 난 이런 게 재밌나보다.... 아무튼 기절해서 깬 루이스와의 이런 저런 사투 끝에 13번 터미널에 도착한 클락과 롭은 마야를 찾고, 질기디 질긴 루이스를 처치해버린다. 하지만 이미 강제적으로 세뇌 당한 마야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런 그에게 벤은 자신이 선물한 음악을 들려주는데, 벤의 손길에 움찔하며 무서워하던 마야는 음악을 듣고는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영화는 끝난다. 이들이 결국 터미너스를 빠져나갔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저 그들의 앞길에 행복을 빌어줄 수밖에.

줄거리를 읽고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비디오 드롬>같은 영화일까 했는데(벤이 기이한 화면이 나오는 TV를 멍하니 응시하는 장면에선 <비디오 드롬>의 그것이 떠올랐다), 그만큼 철학적이진 않다. 물론 생각할 거리들은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가벼운 느낌이랄까. 가벼움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전파에 노출된 사람들'이라니! 할 수 있는 말이 굉장히 많을 것 같은데 단순히 설정으로만 소비된 것 같아서 아쉽다. 옴니버스 형식이어서 그런걸까...? 뇌에 영향을 주는 전파에 대한 SF, "도대체 누굴 믿어야 하는가!" 심리 스릴러, 로맨스나 슬래셔 무비 등 많은 장르들이 떠오르지만 하나도 제대로 써먹지 못한 느낌이다. 누가 각본 뜯어 고쳐서 리메이크 해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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