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시그널 The Signal, 2007 - 데이빗 브룩크너, 댄 부쉬, 제이콥 젠트리 2000년대 공포영화


*스포일러 포함

미국에서 만든 저예산 호러 무비 <더 시그널>. 영화는 세 파트(Transmission 1, 2, 3)으로 각각 나뉘어 있는데, 데이빗 브룩크너-댄 부쉬-제이콥 젠트리 세 감독이 각각 연출하였다. 그렇기에 영화가 통일성이 없고 따로 논다. 이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에겐 불호일 수도 있으나 이게 이 영화만의 개성이기도 하다. 나의 경우,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그렇다고 불호는 아니었다.

영화의 설정은 간단하다. TV, 라디오, 휴대폰 등을 통해 흘러나오는 전파로 인해 사람들의 뇌가 이상해져 자기들끼리 살육파티를 벌인다. 주인공은 마야, 벤, 루이스로 볼 수 있는데, 마야는 벤과 불륜, 루이스와는 부부관계이다. 루이스는 마야에게 집착적인 사랑을 하고 있고, 마야는 마음으론 벤과 떠나고 싶지만 결국 루이스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와중에 벤은 세상 스윗가이. '너를 위한 음악'이라며 손수 CD까지 선물하고, 그 위험한 와중에 마야를 구하겠다고 아파트까지 찾아온다(그러다 머리를 뚜들겨 맞는 신세가 되지만). 대충 세상이 미쳤고 사람도 미쳤고 죄다 미쳤다고 보면 된다.

'Transmission 1'은 스플래터 무비의 성격을 띤다. 아파트 내에서 난장 살육 파티가 벌어지는데, 슬래셔 무비를 잘 못보는 터라 윽윽거리며(내가 찔리는 것처럼) 봤다. 다만 마야가 폭력적으로 변한 루이스와 미친 사람들을 피해 제니스의 집까지 들어올 때까지는 흥미롭게 봤는데, 그 이후가 아쉽다. 정원용 가위를 들고 마야를 위협하던 남자가 갑자기 복도 쪽에서 소리가 들린다고 시선을 뺏겨 멀뚱히 서있는 것도 그렇고(대놓고 주인공 살려주는 느낌이라), 한순간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안 되는 상황에서 벤이 선물해준 음악을 들으면서 걸어가는 마야도 그렇고(엔딩까지 이어지는 중요한 소품이라 해도), 루이스를 묶어 놓은 롭의 수다스러운 설명도 그렇고(이 선택이 경제적인건 알지만), 살짝 아쉽다. <REC>풍을 기대했는데 거기에 미치지도 못했고.

'Transmission 2'는 블랙 코미디이다. 새해 파티를 하려던 안나가 자신의 목을 조르던 남편 켄을 죽이고 망연자실해 있는데, 이웃인 켄이 도움을 청하러 왔다가, 루이스가 들어오게 되면서 벌어지는 내용이다. 처음에 세 명의 감독이 나눠서 연출한줄 잊고있었다가 영화가 갑자기 왜이러지? 감독도 감염 됐나? 싶었다. 개인적 취향으론 2편이 가장 재미있었는데, 곳곳에 배치된 유머코드가 나랑 맞아서이겠지. 어떤 사람들은 정색하면서 봤을 수도 있겠다. 그 유머 코드라는게 조금 흔해서(피범벅한 세 명의 남자가 음료수를 마시며 어색하게 프레즐 과자를 먹는다던가, 이 와중에 정말로 새해 전야 파티를 하러 온 짐의 등장이라던가-이건 사실 말은 안 된다). 그런데 나한텐 아직까지 이런 낡은 유머가 통하는듯. 

아무튼 여기에선 전파로 인해 모두들 환각(안나는 죽은 켄이-루이스는 마야)을 보게 된다. 클락은 강제로 TV를 시청하게 돼서 살짝 맛이 가는 바람에 마야가 13번 터미널로 갔다는 사실을 기억해내어 루이스에게 털어놓는다. 그때 죽은 줄 알았던 벤이 루이스를 기절시키면서 2편이 마무리 된다.

'Transmission 3'은 묵시록적인 로맨스. 가장 평이해서 기억에 잘 안 남는다고 쓰려다가, 잘린 롭의 머리와 대화하는 클락의 환상 장면이 떠오른다. 난 이런 게 재밌나보다.... 아무튼 기절해서 깬 루이스와의 이런 저런 사투 끝에 13번 터미널에 도착한 클락과 롭은 마야를 찾고, 질기디 질긴 루이스를 처치해버린다. 하지만 이미 강제적으로 세뇌 당한 마야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런 그에게 벤은 자신이 선물한 음악을 들려주는데, 벤의 손길에 움찔하며 무서워하던 마야는 음악을 듣고는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영화는 끝난다. 이들이 결국 터미너스를 빠져나갔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저 그들의 앞길에 행복을 빌어줄 수밖에.

줄거리를 읽고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비디오 드롬>같은 영화일까 했는데(벤이 기이한 화면이 나오는 TV를 멍하니 응시하는 장면에선 <비디오 드롬>의 그것이 떠올랐다), 그만큼 철학적이진 않다. 물론 생각할 거리들은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가벼운 느낌이랄까. 가벼움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전파에 노출된 사람들'이라니! 할 수 있는 말이 굉장히 많을 것 같은데 단순히 설정으로만 소비된 것 같아서 아쉽다. 옴니버스 형식이어서 그런걸까...? 뇌에 영향을 주는 전파에 대한 SF, "도대체 누굴 믿어야 하는가!" 심리 스릴러, 로맨스나 슬래셔 무비 등 많은 장르들이 떠오르지만 하나도 제대로 써먹지 못한 느낌이다. 누가 각본 뜯어 고쳐서 리메이크 해줬으면! 

덧글

  • 로그온티어 2018/10/10 01:49 # 답글

    제가 인생 처음으로 리뷰썼던 영화라 기억합니다.
    오랜만에 보네요
  • SHEBA 2018/10/10 20:37 #

    그럴 때 참 반가워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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